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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불매 운동을 시작했는가?
홍윤지 편집국장 기자 기자 (0821dbswl@naver.com)  |  기사전송  2019-09-20 03:15:46  |  최종수정  2019-09-20 03:15:46

지난 8월 2일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로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배제했다. 화이트리스트 국가(백색국가)란, 무기 개발 등에 사용될 수 있는 물자나 기술, 소프트웨어 등의 전략물자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절차를 간소화해 주는 국가 목록을 뜻한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대학생을 비롯한 일반인들 사이에서 일본 브랜드 상품을 구매하지 않고, 상점에서는 되도록 일본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일본 불매운동이 확산됐다. 여름방학 기간에 눈에 띄게 증가하던 일본 여행객이 감소했다. 5년 만에 일본 여행객의 감소한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일본행 티켓을 취소하거나 여행지를 바꾼 사람 등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일본 맥주를 구매하지 않고, 일본 제품의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이번 불매운동 과정에서 일부 청년들이 일본 제품과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국가의 제품 목록을 제공하는 ‘노노 제팬’이라는 웹 사이트를 만들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현 시각 텅텅 비어있는 유니클로’ 등의 제목으로 일본계 오프라인 기업의 매장 사진을 올라오는 등 불매운동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모두 불매운동에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매운동을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반일 감정의 정상치를 넘은 비정상정 행위라고 생각하는 입장도 있다. 이들은 일본여행 취소는 일본 정부에게 악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소상공인과 우리 저가항공사에게 악영향을 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어떤 의견이든 의견을 갖기에 앞서 왜 불매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여운택, 신천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로 강제노동을 시킨 일본제철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전쟁 전 일본제철과 현재의 일본제철은 다르며, 1965년 맺은 청구 협정권으로 한국에 제공했던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로 식민지에 관련된 모든 보상은 끝이라고 답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던 피해자들은 긴 싸움을 시작했다. 2005년 여운택, 신천수, 이춘식, 김규수 할아버지가 다시 소송을 냈고 3년 8개월이 흐르고 나서야 2심에서 승소했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은 일본제철은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씩을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 겨우 승소했지만, 이춘식 할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세 분이 돌아가신 뒤였다. 판결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국제법에 어긋난다면서 대법원 판결에 반발했다. 그리고 경제보보복이 시작됐다.


불매운동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감정에 너무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이다. 차분하게 지속적으로 불매운동을 진행해야 한다. 정부는 대외 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 부품 등의 경쟁력 강화 대책을 공식화한 만큼, 일본 수출규제로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 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특정 개인의 문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라는 점은 이해하고 참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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